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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의 두 가지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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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논문스터디에서 정말 재밌는 논문을 읽었다. 2020년 2월 Cell지에 실린 논문인데 Suzuki, M., & Larkum, M. E. (2020). General Anesthesia Decouples Cortical Pyramidal Neurons. Cell, 180(4), 666-676.e13. 저자가 고작 2명.... 경악. 저자들은 2017년에 microPeriscope 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2017 Nat Comm) 그것인즉슨, 잠망경처럼 거울로 레이저를 90도로 꺾어 특정 피질층만 자극하는 기법이다. (정말 얼마나 정교한가는 둘째 문제겠지만) 이걸 이용해 3년간 연구한 결과물이 이번 논문인 듯. 대부분의 피질은 5~6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세로로 피질을 관통하는 pyramidal neuron이 존재한다. 저자들은 쥐의 체감각피질의 Layer 1의 dendrite를 레이저를 쏘아서 자극하고 L5에 존재하는 soma에서 포텐셜을 측정했다. 정상 상태에서는 빛 자극이 세포체의 탈분극을 유도했지만, 마취제를 투여하면 dendrite의 신호가 soma에 전달되지 않았다. 즉 마취상황에서는 dendrite와 soma의 coupling이 끊어진다는 것. information flow가 차단된다는 것. 특히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마취제의 종류와 상관없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사실 제각기 다른 마취제가 어떻게 같은 기작을 일으킬 수 있느냐가 미스터리 중 하나인데, 현상학적으로는 모든 마취제에 대해서 이런 decoupling이 일어나니 이것이 마취제의 common target이 아니겠느냐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었다. dendrite에 가해진 신호는 약 L3~L4에서부터 사라지는데, 도대체 어떤 채널이 문제가 되길래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보았고, dendrite상의 mAchR이나 mGluR을 막거나, 관련 시상핵인 POm을 deactivate하면 dendrite-soma decoupli...

J 교수님과의 대화

소중한 은사님 J교수님을 장장 반 년만에 뵈었다. 말하며 느낀 바를 더 잊어버리기 전에 여기에나마 정리해 본다. Q. 지난번 만남 이후로 circuit이 아닌 cortex를 파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실제로도 딥러닝이나 각종 테크닉을 적용한 논문들이 좋은 곳에 나오더라.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실험과학자는 이론과학자를 천대하는 경우가 많다. 뇌과학은 어떠한가? 이론과학자, 데이터 분석가로서의 삶은? A. 지금은 그렇다. 원래 유전자부터 행동을 관통하는 실험이 좋은 논문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좋은 일을 하고 싶다면 실험을 병행해야 했다. 다만 빅데이터 신경과학이 대두되면서 자기네 랩 쥐 몇 마리로 하는 실험들은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도 큰 연구기관들은 데이터를 생산할 것이고, 내가 데이터 생산이 좋다면 그곳으로 가서 그걸 하면 된다. 데이터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나눠주고 싶어하니, 프로포절을 잘 써서 분석을 대리하면 된다. 물론 분석을 잘 해야겠지. (J교수님 연구/연구실의 변천사에 관한 얘기들... 왜 mouse 랩을 폐쇄했는가.) 과학이라는 활동 내에서 내가 무슨 형태의 삶을 가장 좋아하는가를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 개인적으로 나도 쥐 천 마리 죽여서 논문 한 편 쓰는 형태의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내가 추구해야 할 삶 역시 결정되어 있는 것이겠지. Q. 나는 얕고 넓은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게 내가 이상적으로 여기던 학자의 모습과 달라 고민스러웠다. A. 그 짓도 30년 하면 범접할 수 없는 내공이 생긴다. 큰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자기기만, 칼 세이건, 파인만 이야기) 깊게 파고 나서 넓히는 사람은 드물다. 대신 내가 그걸 사회적으로 어느 위치에서 하느냐인데, 어쩌면 결과론적인 얘기이겠지. (본인은 잘 풀렸으니) 뇌과학에서 integrative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function은 decision making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modality에 대한 연구는...

<뇌의식의 대화> 출간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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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책방갈다 추천링크(무한감사) 블로깅을 멈춘 가장 큰 원인이었던 번역서 <뇌의식의 대화>가 지난 1월 출간되었다.  네이버 북스 링크 사실 아마추어, 아니 일반인이 번역을 하겠다고 달려든 것 자체가 미친 짓이었다. 불가피한 시행착오로 적잖은 애를 먹었다. 운동을 그만뒀고, 몸이 다소 나빠졌다. 본업인 연구도 지연되었다. 미처 다 바로잡지 못한 오류들은 아직도 쿡쿡 쑤신다. 이런 번역자를 믿고 하염없이 기다려 준 출판사 사장님께 감사할 따름. 제본된 책을 받아든 후 느꼈던 복잡미묘한 감정들은 2, 3월에 겪은 인생 최악의 슬럼프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5000만 명 한국인 중 아무개가 이 책을 집어든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ㅡ하는 고민이었다. 이제는 당시의 감정은 밀려가고 담담하게 추억할 수 있지만, 별다른 예행연습 없이(난 파워블로거도, SNS 헤비유저도 아니니까) 글을 짓고  그걸 갑자기 세상에 내보인다는 것이 적잖은 스트레스였다. 그래도 이번 작업으로부터 내가 크게 성장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문장력이 자각될 정도로 늘어서 두 번째 책 <뇌의식의 우주>를 훨씬 수월히 작업할 수 있었다. 출간 기념으로 두 차례 강연한 것도 정말 큰 자극이었다. 내가 추구하던 삶의 형태가 괜찮은 삶일까ㅡ지식 생산자로서, 글을 짓는 사람으로서 내가 살아도 되는 것일까ㅡ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나름의 답을 얻었다. 요컨대 대중성을 너무 의식할 필요는 없다고,  지금은 타겟 독자에게 인정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시장성은 출판사 內 의사결정권자의 몫이라고) 필력은 성장 가능하되 왕도가 없고, 꾸준한 글짓기와 글읽기만이 답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