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18의 게시물 표시

의식은 양막류에서 시작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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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다음 논문에 관한 요약 및 리뷰이다. Grinde, Bjørn, "Did consciousness first evolve in the amniotes?", Psychology of Consciousness: Theory, Research, and Practice, Vol 5(3), Sep 2018, 239-257 의식은 계통학적으로 언제 발생했는가? 이 질문은 동물 의식을 둘러싼 핵심 논쟁 중 하나이다. 의식의 근간인 신경계는 약 6억 년 전에 군체가 다세포생물로 진화하면서 함께 등장했다. 이 단계에서는 아주 낮은 복잡도의 반사운동 정도의 기능만 수행했으나, 신경세포의 수가 올라가면서 점차 정교한 조절이 가능해졌다. 발달된 신경세포로 (1) 더 많은 경험을 저장하고 (2) 이 정보를 이용해서 생존에 적합한 선택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의식이 만능 도구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의식 역시 특정 상황에서 행동을 돕기 위해 진화된 뇌의 기능이며, 특히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에서 기능하는 것 같다. 심장박동이나 소화처럼 결코 의식의 통제영역에 닿지 않는 행동도 있는 것이다. 오히려 저자는 의식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에너지 소모가 크다 느리다 한 번에 한 정보만 처리할 수 있다. 실행이 아닌 의사결정을 위해 진화했다. (예컨대, 의식을 하면 춤이 더 엉킨다) 진화적 목적에 부합하는 내용만 알아차리거나 느낄 수 있다. 유전자 입장에서는 개체의 행동이 매우 다양해지므로 위험하다. (ex. 인간의 경우, 자살하거나 번식을 하지 않거나...) 그렇다면 동물에 의식이 존재하는지는 어떻게 판단하는가? 사람의 경우 - 말이나 행동을 평가하면 알 수 있다. (→ 감금 증후군이나, 좀비 문제 등이 발생하겠지만.) 동물의 경우 - 말을 할 수 없으므로, 행동에서 단서를 찾아야 한다. 온도계가 내장된 에어컨조차 방 안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듯이, 환...

The Hard Problem : 의식의 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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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은 매우 특별한 존재다. 그 정체가 무엇이냐는 차치하고라도, 의식이 있기에 우리는 물질 세상에 대한 모델을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의식 과학이 90년대에 태동한 이후 의식에 대해서 과학이 속 시원히 밝혀낸 것이 거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의식은 왜 그렇게 연구하기 힘든 것일까? 그래서 오늘은 의식 연구에서 20년 넘게 핫한 키워드로 회자되고 있는 The Hard Problem (의식의 난제)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2016년 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세돌 9단과 알파고와의 대결.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공상을 펼미쳐 인공지능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 거부감, 경외, 기대 등을 함께 느꼈다. 그중 내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해설자들의 반응이었다. 해설자들은 내내 알파고를 의인화하여, 실수를 했다느니, 당황했다느니 하는 표현을 썼다. 자아가 없는 컴퓨터 프로그램에도 사람들이 손쉽게 theory of mind (타인의 자아의 존재, 그리고 그것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능력)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물론 인격이 없는 객체에도 공감능력이 발휘되는 일은 흔하긴 하지만. 당시 많은 이들이 인공지능의 학습 능력이 계속 발전하다 보면 인격을 갖게 되어 인류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공지능이 머잖아 의식을 가제기 될 것이라는 일부의 예상은 의식의 정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기우라는 것이다. 알파고는 어디까지나 반도체를 기반으로 실행되는 프로그램이다. 즉 주어진 기호와 숫자를 이리저리 조작하고, 규칙에 맞게 연산을 수행하여 결과값을 뱉어내는 함수이다. 그러므로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이론적으로는 반도체가 아니라 인간의 손으로도 알파고가 한 계산을 그대로 수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소개할 호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찰머스 (David Chalmers)에게 물었다면, 현상적 의식 (phenomenal consciousness)...

박쥐가 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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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it like to be a bat?" 박쥐가 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이  박쥐 논증 은 위키백과에 개별 항목으로 등재되기도 한 의식에 관한 직관적이고 훌륭한 사고실험이다. 이 논증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의식의 주관성, 동물의식에 대한 시사점 등에 관해 알아보자. 미국의 청소년 공상과학 장편소설 애니모프(Animorphs)에서 주인공들은 자신이 만진 적이 있는 동물로 변신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이 소설의 백미는 변신에 대한 묘사인데, 날개가 돋거나, 껍데기가 생기거나, 입고 있던 옷만 남은 채 앤트맨처럼 작아지는 등 신체적 변화도 일어나지만, 변신 후에 자신의 인격과 그 동물의 본능이 공존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예를 들어 개는 발랄하고, 고양이는 무신경하며, 곤충은 외부자극에 극도로 예민한 것으로 그려진다. 침투 임무를 받고 주인공이 바퀴벌레로 변신하는데, 막상 변신하고 나니 여러 자극들에 날뛰는 바퀴벌레의 단순한 정신을 통제하느라 애를 먹는다. 이 묘사야말로 소설의 백미이다. 아마 작가도 동물행동학에 대한 사전조사를 꽤나 했을 것 같다. 우리는 개나 고양이로 산다는 게 무엇인지 그리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개는 우리보다 색에 대한 구별이 둔하지만, 어두운 곳에서의 물체 식별이나 움직임 포착에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개는 모니터 화면이 1초에 60번 깜박거리는 것을 모두 구별해낼 수 있다. 후각이 훨씬 예민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고양이도 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소설 애니모프 에서처럼 동물의 의식은 모두 인간 의식에서 특정 측면이 결여 혹은 향상된 것일 뿐인가? 이에 반론을 던진, 미국 철학자 토마스 네이글(Thomas Nagel)의 1974년 논문 "What is like to be a bat?" 은 현재까지 무려 8000회 이상 인용되며 당시 인지과학 및 심리철학계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다. [1] 우리가 ...

의식, 포드, 그리고 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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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종양학 전문 소식지 Oncology Times에 2018년 9월 21일에 기고된 칼럼을 번역한 것입니다. 삽입된 이미지는 모두 역자가 추가한 것입니다. 의식, 포드, 그리고 문어 On Consciousness, an Old Black Ford & an Octopus 최근 아내와 나는 거리를 걷다 우연히 오래된 검은색 포드 자동차를 보게 되었다. 즉시 나는 그 차가 어린 시절 나의 부모님이 소유했던 1950년대 초반의 모델임을 알아보았다. 일순간 그 차가 아직 신형이던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포드 1953년식 나의 의식에 남아있는 첫 기억은 우리 집 포드 자동차의 뒷자석에서 깨어난 것이다. 내 몸이 작아서였을지도 모르지만, 차의 천장이 높았던 것도 기억한다. 당시의 차에는 안전벨트가 없었고, 유아용 카시트도 없었으므로 뒷자리에 누워 잠들어 있었음이 분명하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앞좌석에서 이야기하던 통에 잠에서 일어났고, 곧 우리 가족은 차에서 내렸다. 잠에서 깨기 전의 사건들은 말 그대로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심지어 그 당시에도, 그 순간 이전의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었다. 당신의 의식 속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 나는 아마 만 3세 쯤 되었으리라. 연구에 따르면 첫 기억은 만 1~4세에 만들어지며, 만 3세가 대부분이므로 나는 아주 평범한 축에 속하는 셈이다. 전문 의식 연구자들은 "최초의 의식적 기억"이 "의식이 생겨난 증거"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fMRI 연구에 따르면 생후 2개월의 신생아에서도 의식의 증거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검정색 포드 중형차의 뒷좌석에서 깨어나던 그 순간이 바로 나의 의식이,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나 자신에 대한 감각이 처음으로 눈뜬 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의식을 정의할 수 있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만, 나는 위키피디아의 설명을 좋아한다. "깨어있음, 즉 외부의 존재와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