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정보 이론 Integrated Information Theory (IIT)

오늘날 가장 각광받고 있는(부정적으로든, 긍정적으로든) 의식 이론으로는 통합 정보 이론을 꼽을 수 있다. 의식의 정체를 논하다 보면 양립 불가능한 두 극단의 생각에 치닫기 쉽다. 한 극단에서는 의식이 예컨대 영혼과 같은 부가적인 무언가라고 주장한다. 인간 혹은 특정 존재에게 육신 외에 부여된 무언가가 있으므로, 육신이 죽어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천국 혹은 환생에 대한 믿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른바 이원론은 고대로부터 이어진 오랜 믿음이다. 반대편 끝에서는 의식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단, 그 설명 방식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설왕설래가 오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Hard problem이라는 표현을 고안한 찰머스는 의식이 만물을 이루는 우주의 기본 구성 요소라고 주장한다. 가령 전자가 전기장을 따라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은 그것에게 우주 법칙을 따르고자 하는 “주관”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의식, 즉 주관성이 우주의 기본 구성요소라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 심지어 돌멩이조차 그 나름대로의 의식을 갖고, 그 자신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특정 물리계의 의식 수준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천착한 이들이 바로 제럴드 에델만과 줄리오 토노니이다. 둘은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협업하여 역동적 핵심부 가설을 구축하였고, 2000년대 초반 결별하여 각자의 길을 걸었다. 이들의 이론의 핵심은 의식의 생리학적 메커니즘이 무엇이냐를 묻기 이전에 의식이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묻는다는 점이다. 이 경우 의식은 생명 현상이 아닌, 하나의 정보처리 기능으로서 정의된다. 토노니는 이후 독자적으로 통합 정보 이론을 고안하였고, 코흐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토노니는 의식의 특성으로 다음 5가지 “공리”를 든다. 1. 내재: 의식은 존재한다. 경험은 실재한다. 의식은 외부 관찰자에 의해 영향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재적이다. 2. 구조: 의식은 구조가 있다. 색, 모양, 움직임 등 여러 ...

연구 잡상

뒤늦었지만 이제야 살짝 체화할 것 같은 몇 가지 깨달음. 첫째, 연구자로서의 내 일상을 유지하는 어떠한 황금률 같은 루틴이나 규칙은 없다는 것.  달려드는 괴한을 막는 것에 정해진 룰이 없듯, 나 역시 밀려드는 무력감, 회피 욕구, 안주하고 싶은 마음에 대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고, 체면에 개의치 않고, 그 순간 손에 짚이는 모든 방법을 다 써서 저항해야 한다는 것.  어느 시점에 잘 드는 무기도 맥락이 바뀌면 무디어진다.  과감히 내던지고 다른 무기를 집어들어야 한다. 모든 건 요령이다. 둘째, 변화는 의식과 무의식에서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  판단과 논리로 나의 의식을 설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무의식에 속하는 깊은 감정을 달래야 좀 더 확실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열심히 살아야지ㅡ라고 의식적으로 결심하고 나를 채찍질한다면, 무의식에서는 높은 확률로 난 왜 열심히 살지 않을까ㅡ라는 자기혐오가 생긴다.  결심은 의식에서 곧 희미해지겠지만, 무의식에 남은 자기혐오감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무기력이나 폭식과 같은 백래쉬로 되돌아온다.  소소한 성공의 경험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반대로, 아무리 심한 무기력에 빠졌더라도, 저항하려는 마음이 무의식에 있다면(지금까지 해 온 게 아깝고 억울해!), 역전의 불씨는 언제든 타오를 수 있다.  (무의식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나는 무의식을 의식적 서술자의 논리 체계를 제외한 억압된 감정, 호르몬 밸런스, 내현기억, 짧게 스쳐가는 생각 등 여러 심리 요소의 복합체로 본다.) 셋째, 어떠한 조건에서도 인간이 하루 동안 느끼는 일상적 행/불행의 양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뇌의 호르몬 체계는 항상성을 따른다.  삶의 에너지 랜드스케이프는 생각보다 평탄해서, local minimum의 깊이가 다들 별반 다르지가 않다. 즉, 어느 쪽으로 가든 그 나름대로 행복이 있다는 것.  따라서 성공에 너...

Coherence, Transfer entropy, Lempel-Ziv Complex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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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Pal et al. (2020) 의 정말 너무너무 재밌는 논문을 읽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마취된 rat의 prefrontal(but not parietal)에 cholinergic stimulation을 하면 쥐가 마취에서 깨어나는데,  기존에 의식 상태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되던 뇌파의 connectivity, slow oscillation, complexity 중 "깨어남"과 상관되는 변수는 없더라는 것. 사실 그것들은 drug effect이지, 의식 상태를 제대로 반영하지는 못한다는 것. drug로 인한 뇌의 변화와 의식의 변화가 decouple될 수 있다는 것. 나중을 위해 이 논문에 나온 3가지 개념을 잊어버리기 전에 정리하려 한다. 1. Coherence (위키) Frequency domain에서 본 두 신호의 correlation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spectral power (frequency의 제곱)의 correlation. 뇌파 분석에서 자주 쓰는 이유는, 특정 frequency band만 잘라서 그에 해당하는 정보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성적으로 말하자면, 두 뇌 영역의 연결도를 본다고 말할 수 있다.  pairwise하게 전부 합하면, 뇌 전반의 connectivity라고도 할 수 있겠지. 2. Transfer entropy (엄청 정리 잘 된 블로그) 엔트로피는 결국 주어진 확률 분포가 얼마나 랜덤에 가까운지를 보는 거다. 무작위할수록 엔트로피는 크고, 규칙에 대한 정보가 많을수록 엔트로피는 작아진다. Y=>X의 transfer entropy는 X와 Y의 과거 확률 분포 양상을 보고 현재 X를 추정하는 것이 단순히 X의 과거 확률 분포 양상을 보고 현재 X를 추정하는 것에 비해서 얼마나 더 정확한지를 보는 거다. 추측할 variable을 어떻게 정의할 거냐에 따라 time delay나 embedding dimension이라는 개념도 등장한다. 어쨌든 방향성을 언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 3...

『나는 천국을 보았다』 : 환상은 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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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왔다는 신경외과 의사 이븐 알렉산더의 <나는 천국을 보았다(Proof of heaven)>을 읽고 있다. 임사체험은 무엇일까? 저자는 다른 임사체험자들과 달리 체험 도중에 자아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깊숙한 곳까지 여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임사체험의 이러한 비일관성이 그것이 환상이라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꿈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는 모두 꿈을 꾸므로 다른 사람에게 구태여 꿈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꿈이 정말 희귀한 현상이라면 어떨까. 꿈을 꾼 사람은 꿈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에게 꿈이 무엇인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꿈은 경험자에게는 완벽하고 생생한 실제이고, 뇌가 특정 모드로 진입하였을 때 만들어지는 틀림없이 물리적인 신경 사건이다. 하지만 꿈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기존의 경험과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의 시뮬라크르이며, 일어난 적 없다는 점에서 환상이다. 꿈을 경험해본 적 없는 사람에겐 이것이 대단한 역설처럼 여겨지지 않을까? 임사체험도 꿈 혹은 환각과 같은 원리라고 생각한다. 임사체험은 뇌의 특정한 영역 혹은 모드(특히 전두엽과 좌뇌)가 손상되고 나머지(우뇌?)는 정상 작동할 때 생기는 경험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람마다 어느 정도 일관성을 띤다. 이 책의 경우처럼 개인별/문화별로 다른 경험을 하는 사례가 있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이다. 그 사람의 기억, 그리고 손상 부위에 따라 다른 경험이 일어날 수 있다.  향정신성 약물로 인한 환각 속에서도 사람들은 깨달음과 영성을 경험한다. 다만 이때 사람들은 깨어 있기 때문에 실제 감각적 자극과 더불어 특정 모드가 더 향상된, 혹은 보충된 실재를 경험한다.  우리는 뇌의 필터가 허용하는 것만을 볼 수 있다. 우리의 뇌는, 특히 언어/논리를 관장하는 좌뇌는 합리성에 대한 감각과 개인 또는 자아라는 인식을 발생시키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더 높은 차원을 알고 경험하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102p) 나도 ...

문어의 영혼 : 의식의 수렴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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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 몽고메리의 <문어의 영혼>을 읽고 있다. 책에서 저자는 아쿠아리움을 방문하면서 문어뿐만 아니라 여러 수생생물들과 교감한 기록을 소개한다. 여러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문어들은 훈련사 각각을 기억하고, 흡연 여부나 긴장했는지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고, 장난을 치기도 하며, 자주 탈출을 꿈꾼다. 개체마다 성격도 다르다. 마치 서로 다른 인격이 있는 것처럼. 문어는 두족류 중에는 가장 똑똑한 동물이다. 실제로 도구도 쓰고, 패턴을 기억한다. 피부 색소를 변화시켜 환경을 모사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문어가 이렇게 높은 지능을 갖도록 진화한 것은 진화과정에서 조개와 같은 단단한 피각을 잃어버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부드러운 살점을 노출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이상, 문제 해결 능력을 갖도록 진화한 것이다. 놀라운 점은 두족류는 선구동물, 인간은 후구동물로서 약 5억년 전, 진화의 매우 이른 단계에서 갈라졌다는 거다. 인간을 비롯한 소수의 동물만이 가진 그 기능을, 수억 년의 시간에 거쳐 다른 방식으로 진화해 낸 거다. 문어 신경계의 구조는 인간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동물들, 척삭동물과 전혀 다르다. 물론 발생유전학적으로 대응되는 영역들은 존재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추정일 뿐, 각 영역이 어떻게 기능하고 정보를 모으는지는 모른다. 문어는 각 발마다 신경절을 가지고 있고, 분산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척삭동물의 뇌에 존재하는 체감각지도가 문어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몸에 대한 정보가 중앙 뇌에 모이지 않는다는 거다. 그렇다면 문어는 도대체 어떻게 세상을 보고 느낄까? 어쩜 문어는 이 책의 묘사처럼 촉수에 느껴지는 맛으로 세상을 볼는지도 모른다. 중앙으로 집중된 뇌가 존재하지 않으니, 각 팔이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 책은 학술서적이 아닌 에세이집이고, 저자가 동물에 대해 높은 감수성을 가지고 있어 문어의 능력에 대해 과대평가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분...

<뇌의식의 우주> 역자후기와 짤막한 소고

지난 5월 <뇌의식의 우주> 번역을 마치고 오늘 역자후기를 탈고했다. 제럴드 에델만과 줄리오 토노니가 2000년에 쓴 이 책은 신경 다윈주의로 일컬어지는 에델만의 이론이 토노니의 IIT에 어떠한 영향을 줬는지, 둘이 어떻게 하나의 뿌리를 공유하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의식의 특성으로부터 거꾸로 그것을 가능케 하는 생물학적 시스템을 파고들어가는 발상의 전환이 너무도 흥미롭다. 열심히 쓴 글인지라... 블로그에도 역자후기 중 일부를 공개하려 한다. 역자후기  세상에는 수많은 학문이 있다 . 각 학문은 질문이라는 ‘ 티끌 ’ 이 무수히 모여 만들어진 하나의 별과 같다 . 지구 표면 아래 외핵과 내핵이 있듯 각 학문에도 핵이 있다 . 핵심에 가까운 질문일수록 더 ‘ 뜨겁고 ’ 본질적이며 난해하다 . 칸트는 < 순수이성비판 > 에서 철학의 핵심 질문으로 다음 세 가지를 꼽았다 . “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What can I know?)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What should I do?) 내가 소망해도 되는 것은 무엇인가 ?(What may I hope?)” 이 세 물음은 결국 단 하나의 질문으로 소급된다 . “ 인간 정신 , 즉 의식의 정체는 무엇인가 ?”   대부분의 자연과학은 물리 세계의 본질을 탐구한다 . 가령 물리학은 물질이 무엇인가를 , 화학은 물질이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를 , 생물학은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그 핵심 질문으로 삼고 있다 . 하지만 신경과학은 조금 다르다 . 일견 신경과학은 ‘ 뇌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 를 객관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인 것처럼 보인다 . ( 물론 그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 하지만 신경과학은 모든 연구의 기저에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늘 인간 의식에 대한 통찰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자연과학 분과들과 다르다 . 감각 , 기억 , 의사결정 등의 고차 기능을 연구할 경우 이는 자명하다 . 실제로 지난 수십년 간 교육학 , 마케팅 ...

조세프 르두 <왜 우리는 의식을 이런 식으로 연구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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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s://www.pnas.org/content/117/13/6976 옛날에 북마크해 둔 조세프 르두의 Perspective 논문인데... 의식 연구의 역사를 개괄한 아주 좋은 논문이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의식 연구는 일반적인 통념처럼 1990년에 부흥한 게 아니라, 19세기 말부터 꾸준히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제목이 참 재밌다. 다시 말해 왜 우리는 의식을 이런 식으로 연구하게 되었나?에 관한 소고다. 흔히 의식 연구의 역사를 이야기하면, 20세기 초 프로이트와 독일 심리학자들의 영향으로 의식에 관한 탐구가 많이 이루어졌으나, 행동주의의 그늘 아래 수십 년간 의식은 심리학에서 배척되었고, 그러다 인지주의와 계산주의가 떠오르고 fMRI가 발전하면서 프랜시스 크릭, 제럴드 에델만, 버나드 바스 등을 기치로 하여 1990년대에 다학제적 연구로서의 consciousness studies가 시작되었다고들 말한다. 특히 크릭과 크리스토프 코흐는 시각 신호의 의식 여부와 상관성을 지닌 뇌 영역을 찾아냄으로써 시각 의식의 신경상관물을 파악할 수 있다는 방법론적  제안 을 했고, 실제로 2000년대 후반까지도 영장류로 관련 실험을 했다. (실패로 끝난 건 안 비밀이지만..) 크릭과 코흐의 논문이 주류 심리학과 신경과학자들이 의식 연구를 하게끔 촉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최초는 아니었다. 60~70년대 분리뇌, 맹시, 기억상실 연구는 이후의 의식 연구의 개념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주제들 역시 시각과 많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 논문 본문 [뇌의식의 대화]에도 나오지만, 저 사례 외에도 꿈, 명상, 동물 의식 등 다각도의 연구가 90년대 이전에도 이루어졌었다. 어쩌면 방법론의 다양성으로만 따지면 90년대 이전이 더 풍성했을는지도 모르겠다. 의식에 대뇌가 필요하다는 주장의 주요 근거는 데이비드 페리에의 전기 자극 연구였다. ... 페리에는 대뇌피질의 활동이 의식적 경험...